[최민수의 상담이야기 23] '퀘렌시아'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란 말이 있습니다. 퀘렌시아는 ‘쉴 수 있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스페인은 투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투우장 한쪽에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소들만이 알고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을 ‘퀘렌시아’라고 부릅니다.

소들이 투우사와 싸우다 지치면 퀘렌시아로 가서 숨을 고르고 힘을 다시 충전합니다. 소들이 기운을 되찾으면 다시 투우사와 싸우기 위해 나섭니다. 그래서 소들에게 퀘렌시아는 지친 몸을 쉬게 하면서 힘을 다시 충전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퀘렌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부부는 심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싸움의 정도가 지나치면 잠시 중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잠시 침묵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아니면 배우자들 중의 한 편이 잠시 밖에 나가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거나 아니면 다음 날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갈등의 단초가 되었던 이유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부부는 삶이 너무 고달프고 지치면 잠시 각박한 현실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면서 각박했던 공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킵니다. 또 어떤 분은 삶이 피곤하고 쉼이 필요하다 싶으면 무작정 호텔에 가서 잠을 청합니다. 아무 일정도 잡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푹 쉬고 삶으로 복귀합니다. 또 어떤 분은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마음껏 상상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들이 퀘렌시아입니다. 그래서 퀘렌시아는 ‘쉼의 장소’ 또는 ‘회복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담학에서도 퀘렌시아와 유사한 개념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정서적 공간(Emotional space)’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에게 정서적인 공간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든 감정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들을 종종 경험하지 않습니까? 상대방의 반응에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조금 더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반응했더라면 지금의 실수나 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거나 또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반응에 보다 더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기 반성과 더불어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오롯이 주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서적인 공간입니다. 정서적인 공간이라고 해서 꼭 장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서적인 공간에는 시간적인 공간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보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한 템포 늦게 반응한다면 지금보다 상당한 여유로움과 객관적인 자세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해, 열심히 살아온 우리 자신에게 잠시 정서적인 공간을 마련해보십시오. 이것은 비단 멀리 떠나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 동안이라도 유쾌하고 흥겨운 시간과 공간을 가져 보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다시 활력을 되찾고 소망을 발견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억만 금의 돈을 버는 것보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그리고 보람이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올해에는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고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퀘렌시아, 정서적인 공간을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최민수 목사
The 낮은 교회 담임
상담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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